인성(人性)이란 무엇인가?
인성은 ‘사람 됨, 사람이 갖추어야 할 성질’이라고 되어 있다.
인성(人性)교육이란?
‘마음의 바탕이나 사람의 됨됨이 등의 성품을 함양시키기 위한 교육’이라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응당 사람이기에 가지고 있어야 할 생각, 자세, 태도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의문이 하나 생기는 것은,
“나는 사람다운 사람이야!’라고 본인이 소리 높여 주장한다고 인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내가 아무리 “나는 정말 사람다운 사람이고 당신들은 인정해야 해.” 한다고 해서
“그래요. 당신은 정말로 사람다운 사람이에요.”라고 다른 사람이 인정한다는 것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인성(人性)은 ‘관계성’을 포함하는 단어인 것이다.
내가 주장해서가 아니라 남이 “그 사람은 참 사람다운 사람이야.”라고 인정받을 때,
그 사람은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남이 인정하는 ‘사람다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다운 행동’을 할 때이다.
그렇다면 ‘사람다운 행동’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건 세계관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다.
즉, 올바른 세계관이 형성되어 있을 때, ‘사람다운 행동’이 나오고 ‘사람다운 행동’이 밖으로 뿜어져 나오니까 사람들이 그 사람을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되고, 대학에 들어갈 때 평가에 넣는다는 등 난리가 난 것처럼 행동하는 걸까?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일까?
2014년 5월 20일
○○지역에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사건이 일어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다.
헤어진 남친이 여친의 부모를 살해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남친과 여친은 2개월 정도 사귀었는데, 남친이 술만 먹으면 여친을 때리는 일이 잦자, 여친 부모님들이 남친 부모님을 만나 둘을 헤어지도록 항의했고, 헤어지게 된 남친은 이에 앙심을 품어 계획적으로 여친부모를 살해했으며,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여친마저 그 시신 옆에 감금시키는 놀랍고도 믿기지 않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사건.......
지금 대한민국은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인 것이다.
공부는 많이 가르치지만 사람됨은 잃어버린 사회, 이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인 것이다.
남친은 왜 부모를 살해하고 여친을 감금까지 한 것일까요?
나는 이 사건은 보면서 사건의 주인공 남친은 ‘거절’이라는 것이 ‘마음의 표현 중 하나’로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극단적인 결과라 판단한다.
‘거절’이라는 것도 ‘표현’의 하나인데 그 남친에게는 ‘내 것을 뺏은 행위’로 받아들여졌고 나아가 ‘집착에 따른 폭력’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거절’이라는 단어에 공격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왜 그런 걸까?
식당에서 아이는 소리치며 날뛰며 돌아다니는데 남들이 싫어하건 말건 놓아두다가 마침내 누가 뭐라 하면 “아이 기 죽이는 거냐!”고 팔짱끼고 대드는 ‘인성결핍, 과잉보호’가 ‘자식사랑’이라 착각하는 부모 밑에서
대부분 형제 없이 독자(獨子)로 금이야 옥이야 떠받들리며 성장하다보니
남의 것도 내 것이라고 우기고 뺏어달라고 울고, 자기가 먼저 해야만 한다며 땅바닥에 뒹굴고, 친구와 함께 나누는 것은 죽어도 안 된다며 땡깡 부리는 것이 당연한,
가지고 싶은 것을 못 가져 본 적 없는 지금의 세대는 ‘거절’이라는 것이 멀고도 먼 남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 사건은 남이 나를 ‘거절’하는 것은 죽어도 못 보는 이 시대의 당연한 자화상(自畵像)이었던 것이다.
인성을 키우는 방법은 각 단체마다 또는 개인 개인이 모두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토론이라는 구체적인 방법이 아니고는 인성을 키울 수 없음을 인정할 것이다.
웅변처럼 혼자서 하는 행위로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생각을 묶는 방법을 이해할 수 없으며, 습득할 수도 없기 때문에 토론은 인성교육에서 빛나는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론으로 칠판에 쓰고, PPT로 공부하고 암기한들 인성이, 올바른 세계관이, 올바른 세계관을 실천할 용기가 생길까?
이런 모든 이유가 토론이라는 방법이 인성교육을 위한 가장 기초수단이 된다는 것을 교육전문가들일수록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인면수심의 행위를 한 그 남친이 어렸을 때부터 토론교육을 통해 상대방의 거절이 표현의 한 방법임을 미리 받아들이는 훈련이 되었더라면 그 상황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장담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바닥에 떨어진 인성, 사람다움을 바로 세울 절박한 시대에 서있다는 것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도 나서고 대학도 나서고 영유아 교육원들도 나서고 대한민국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나는 25년간 토론을 연구하면서 토론만이 ‘똑똑한 아이를 훌륭하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토론만이 ‘훌륭한 생각을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을 확인과 확신으로 교육현장에 임해왔다.
인성교육은 토론이라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질 때 시작되고 완성되는 교육임을 다시 한 번 주장합니다.
영남사이버대학교 논술지도학과 신동명교수